
솔직히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AI가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그냥 집어삼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클로드나 GPT가 웬만한 SaaS 기능을 무료로 해버리는데, 굳이 비싼 구독료 내가며 별도 서비스를 쓸 이유가 있냐 싶었거든요. 그런데 데이터를 조금 더 파고들면서 그 생각이 꽤 바뀌었습니다. 살아남는 기업과 도태되는 기업 사이의 경계가 생각보다 훨씬 선명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AI 에이전트가 대체하는 것과 못 하는 것
요즘 AI 에이전트(Agent)라는 말이 넘쳐납니다. 여기서 에이전트란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순차적으로 작업을 실행하는 AI 시스템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코딩 보조 도구인 클로드 코드 같은 서비스가 이 범주에 들어갑니다.
문제는 이 에이전트의 성능이 너무 좋아지면서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흔들렸다는 점입니다. "에이전트가 기존 소프트웨어를 대체하면 SaaS 기업들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위기론이 시장 전반에 퍼졌습니다. 제가 직접 관련 섹터를 들여다봤을 때도, 이 불안감이 꽤 실제적으로 주가에 반영돼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사실 전에도 한 번 있었습니다. 클라우드 전환이 본격화되던 시기에도 "클라우드가 소프트웨어를 다 대체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소프트웨어 시장은 클라우드 인프라를 기반으로 오히려 외연이 더 넓어졌습니다. AI 에이전트도 비슷한 흐름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핵심은 어떤 소프트웨어가 대체되느냐입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대체 가능성이 높은 영역: 업무 흐름이 표준화되어 있고, 컴플라이언스(규제 준수) 요구가 낮으며, 일반 상식 수준의 답변으로 충분한 서비스
- 대체되기 어려운 영역: 민감한 레코드(기록 데이터)를 다루거나, 규제와 법적 책임이 따르는 서비스, 철강·법률처럼 산업 특화 전문 지식이 필요한 영역
제 경험상 이건 꽤 직관적입니다. 범용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특정 기업의 내부 데이터에 접근하거나 특정 산업의 맥락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에이전트가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은 오히려 가치가 올라가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AI 인프라 과잉 논란, 실제로는 부족이 문제
"AI 케파(Capacity, 인프라 처리 용량)가 과잉이다", "투자가 거품이다"라는 말이 많습니다. 솔직히 저도 한동안 이 의견에 꽤 끌렸습니다. 그런데 실제 서비스를 쓰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제미나이를 자주 쓰시는 분이라면 느끼셨을 텐데, 작년 하반기보다 응답이 확연히 느려진 구간이 있었습니다. 이건 모델이 나빠진 게 아니라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인프라 부하가 생긴 결과입니다.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들의 케팩스(CapEx, 자본지출)가 오히려 더 빠르게 늘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하이퍼스케일러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처럼 전 세계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을 가리킵니다.
2026년 이들 기업의 케팩스는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할 전망입니다(출처: Bloomberg Intelligence). 이미 수주를 받아놓은 서비스들이 인프라 부족 때문에 매출을 제때 실현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투자를 줄이는 게 아니라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구조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들 빅테크가 풀스택(Full-Stack)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풀스택이란 칩 설계부터 데이터센터 운영, 모델 개발, 최종 서비스까지 전 과정을 한 기업이 수직계열화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알파벳이 TPU 칩을 직접 만들고, 제미나이 모델을 개발하고, 유튜브와 구글 검색을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구조에서 데이터센터 투자는 외부 판매가 아니라 자사 서비스를 위한 내부 인프라 확충입니다.
국내 AI 산업, 위협과 기회가 동시에 온다
국내 AI 기업들은 지금 꽤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오픈 에이전트의 위협을 받는 동시에, 소버린 AI(Sovereign AI)라는 기회도 맞이하고 있습니다. 소버린 AI란 특정 국가나 언어·문화 맥락에 특화된 자국 AI 모델과 인프라를 갖추는 전략을 말합니다. 미국이나 중국을 제외하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춘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상황은 상당히 유리한 편입니다.
정부는 엔비디아 GPU 26만 장 확보 계획을 발표했고,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육성을 위한 5대 사업자 선정도 진행 중입니다(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여기서 파운데이션 모델(Foundation Model)이란 GPT나 클로드처럼 방대한 데이터로 사전 학습된 대형 언어 모델(LLM)을 뜻하며, 다양한 하위 서비스의 기반이 됩니다. 이 모델이 공공 부문에 배포되면 중소 스타트업들도 대규모 자체 투자 없이 AI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직접 국내 AI 기업들의 실적 흐름을 살펴봤을 때, 확실히 두 그룹이 갈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부 SI(시스템통합) 사업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수익성이 정체되거나 낮아지는 반면,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형태로 전환한 기업들의 매출 성장 곡선은 눈에 띄게 가파릅니다. S2W, 마키나락스, 빌리언 같은 기업들이 이 방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화된 서비스와 데이터로 승부하는 기업이 AI 시대의 진짜 생존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로봇 산업, 피지컬 AI 시대의 한국 경쟁력
로봇 산업은 지금 피지컬 AI(Physical AI) 패러다임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피지컬 AI란 소프트웨어 AI가 로봇이라는 물리적 몸체와 결합해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지능을 말합니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가 대표적인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입니다. 여기서 휴머노이드란 인간과 유사한 형태로 설계된 로봇을 말하며, 단순 반복 작업을 넘어 다양한 환경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대차는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통해 엔비디아·구글 딥마인드와 협력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올해 CES 발표 이후 두 달 만에 주가가 127% 오른 것은 단순히 로봇 하나가 잘 움직여서가 아닙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하드웨어, 현대차의 피지컬 AI 소프트웨어, 그룹 계열사의 공장 운영이 하나로 연결되는 생태계 가치가 시장에 반영된 결과라고 봅니다. 삼성전자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협력도 같은 맥락입니다.
한국의 구조적 강점은 여기서 나옵니다. 자동차, 조선, 반도체, 방산처럼 실제 제조 현장이 존재한다는 점이 결정적입니다. 미국은 설계 역량은 뛰어나지만 공장이 없어 현장 비정형 데이터를 축적하기가 어렵습니다. 용접 로봇을 테스트하려면 조선소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한국에는 있습니다. 이 현장 데이터는 어떤 빅테크도 쉽게 가져갈 수 없는 자산입니다.
중국에 비해 가성비가 부족하다는 건 분명한 약점입니다. 하지만 미중 디커플링(Decoupling) 구도 속에서, 중국산 로봇에 대한 보안 우려가 커질수록 한국 기업의 포지션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디커플링이란 미국과 중국이 기술·무역 영역에서 상호 의존을 줄이고 공급망을 분리하는 흐름을 말합니다. "미국 설계, 한국 제조"라는 구도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고, 이게 지금 국내 로봇 기업들에게 진짜 기회입니다.
AI와 로봇 산업은 변화가 빠른 만큼 판단도 자주 틀립니다. 제가 직접 흐름을 쫓으면서 배운 건, 거시적인 위협론과 기회론에 흔들리기보다는 어떤 영역에서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만들어내느냐를 기준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는 점입니다. 범용 AI가 못 들어오는 특화 영역, 현장 데이터를 독점한 제조 기반, 그리고 자본을 키워 스케일업하는 기업들이 이 사이클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투자 관점이든 사업 관점이든, 지금 이 구조를 이해해두는 것이 앞으로 몇 년을 꽤 다르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분석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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